일정:2024년 7월 4일~7월 21일
장소:여행자극장
기사:극단 코너스톤의 ‘진천사는 추천석’(2024년 7월 4일~7월 21일, 여행자 극장, 이철희 연출)은 이철희 연출 특유의 B급 유머 감성과 신명나는 동네잔치 한 판을 빚어낸 듯한 소동 희극이다.
극단 코너스톤은 창단 뒤 줄곧 충청 지역을 배경으로 충청도 사투리를 활용한 재기발랄한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진천사는 추천석’은 충북 진천의 설화 ‘생거진천 사거용인’을 다룬다. 진천에서 아내, 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던 ‘추천석’이란 인물이 어느 날 저승사자들의 실수로 동명이인인 ‘용인 사는 추천석’을 대신해 저승에 끌려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철희 연출은 설화의 기본 뼈대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저승길을 구현했으며, 번뜩이는 풍자와 유머로 무대 위에 서사를 촘촘히 세운다. 진천과 용인, 저승세계로 자유롭게 변주하는 무대 전환이 돋보인다. 과장된 움직임, 힘 있는 목소리로 폭발적 역량을 발휘한 배우들의 연기 감각이 현대판 마당놀이를 떠올리게 한다.
한바탕 눈물과 웃음 끝엔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남긴다.
일정:2024년 7월 28일~8월 4일
장소: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기사:극단 프로젝트 아일랜드의 ‘장녀들’(2024년 7월 28일~8월 4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서지혜 연출)은 초고령화 사회에서 부모의 돌봄을 떠맡게 된 장녀들의 탈출구 없는 삶을 조명한다. 사회제도의 미비가 개인에게 전가하는 책임과 현실을 통해 ‘가족’에 대한 근본적 고찰은 물론,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까지 던진다.
‘장녀들’은 나오키상을 수상한 일본의 작가 시노다 세츠코가 20년간 치매 노모를 돌본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다. 서지혜 연출이 직접 각색해 한국적 시각으로 재해석했다. 이야기는 총 3부작으로, 앞서 1부 ‘집 지키는 딸’, 3부 ‘퍼스트 레이디’ 두 편이 먼저 공연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번 작품은 앞서 공연된 1부와 3부에 발표되지 않았던 2부 ‘미션’까지 선보였다. 출연 배우만 30명에, 3부작을 쉬지 않고 달려 쉬는 시간 15분을 제외한 공연 길이만 무려 3시간 45분이다. 방대한 연습량과 뛰어난 캐릭터들의 해석을 바탕으로 30명의 배우가 선보인 응집된 앙상블이 무대 몰입을 견인한다. 다양한 동선, 공간 변환, 세밀한 디테일 등 입체적 무대구성으로 상쇄한 서지혜의 연출력이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일정:2024년 1월 13일~1월 21일
장소: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기사:극단 미인의 ‘아들에게: 미옥 앨리스 현’(이하 ‘아들에게’, 2024년 1월 13일~1월 21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김수희 연출)은 당대 지식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한 여성의 고단한 생애를 통해 여성 서사를 조명하면서, 우리 근현대사가 낳은 이념 갈등의 비극까지 담아낸 작품이다.
주인공 현미옥(앨리스 현)은 독립운동가 현순의 딸로, 1903년 미국 하와이에서 태어나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등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펼친 활동가다. 누구보다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조국 통일에 힘썼지만, 공산주의자란 이유로 역사에서 지워진 인물이다. 성별과 이념, 배경 때문에 해방 이후 북한과 미국 어느 땅에도 환영받지 못한 그는 월북 후 북한에서마저 미국 간첩혐의가 씌워져 숙청당한다.
‘아들에게’는 박기자와 현미옥의 인터뷰 형식으로 현미옥의 출생부터 사망까지 기구한 삶의 궤적을 되짚는다. 이념과 갈등의 역사에 희생된 그녀의 인생을 조명하면서,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채울 수 없던 현미옥의 고독과 외로움을 이야기한다. 이념적 양극화에 사로잡힌 한국사회의 단상을 근현대사의 맥락을 빌려 긴장 넘치고 속도감있는 전개로 풀어냈다. 무대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영화처럼 입체감을 살린 연출 기법과 공간 활용, 배우들의 에너지 넘치는 연기가 돋보인다.
일정:2024년 2월 17일~2월 25일
장소: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기사:‘갈등의 시대, 서로 다른 인간군상 간 대립이 낳은 비극을 통해 연민과 공존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야기’.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극단 아르케의 ‘화전’(2024년 2월 17일~2월 25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김승철 연출)에 대한 평가다.
화전은 혼돈에 휩싸여 있던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다. 조선이 세워지자 강원도 정선으로 몸을 숨긴 고려 유신들이 화전민 부락에 흘러 들어가며 벌어지는 사건과 비극을 그렸다. 붓만 잡아 농기구는 만져본 적 없는 유신들이 정치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화전민들의 생활 방식을 배우고, 그들의 삶에 스며들며 벌어지는 갈등과 연민, 화해의 과정을 담고 있다. 조선 건국에 반대했던 고려의 칠현(7명의 유신)이 강원도 정선 서운산에 은거해 절개를 지켰다는 역사 속 짧은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극단 아르케의 선장인 김승철 연출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극의 배경은 조선 초기지만 무대에 오른 배우들이 모두 현대 의상을 입고 연기하는 연출이 눈에 띈다. 배우들은 주로 관객을 향해 정면을 바라보며 연기하다, 중간중간 서로를 바라보고 만지기도 하며 서로 다른 신분과 가치관에서 비롯된 갈등과 번민을 표현한다. 서로 다른 집단 간 불통과 반목이 과거에서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지는 듯한 연출이다. 음악에서도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했다. 키보드와 북, 첼로, 바이올린 등 현대의 악기를 사용해 전통의 멜로디를 구현해냈다. 특히 유신들을 편견없이 포용한 화전민 마을의 촌장 캐릭터를 통해 갈등과 분열의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건 서로를 향한 연민과 연대임을 힘주어 말한다. 연극계에 시대극이 한동안 부재했던 아쉬움도 덜어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