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작품

[문화대상 이 작품] 아흔 마에스트로, "고전"으로 초대하다

[문화대상 이 작품] 아흔 마에스트로, "고전"으로 초대하다

-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 밤베르크교향악단" 내한공연
베토벤 "교향곡 5번 & 6번" 절제된 연주 일품
"교향악 진수"…고전음악시대 되돌아간 듯

[이나리메 작곡가] 1927년생. 아흔을 앞둔 마에스트로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가 독일 밤베르크교향악단과 함께 교향악의 진수를 보여주는 공연을 국내 클래식 팬들에게 선사했다. 지난 10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 밤베르크교향악단’ 내한공연에서 무엇보다 경이로운 일은 블롬슈테트의 지휘였다. 지휘자의 수명이 다른 예술가에 비해 길다고는 하지만 깨알 같은 악보를 계속 들여다보고 수십 명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밸런스를 조절해 자신의 해석을 담는 것은 그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다. 카라얀이 그의 말년에 베를린필하모니와 내한해 거의 정지된 동작으로 지휘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블롬슈테트는 시종일관 적극적으로 고전 중의 고전을 정련해 들려줬다.

밤베르크교향악단은 1946년 프라하에서 독일로 망명한 필하모닉 단원들과 독일과 국경지대에 있는 체코의 카를로비 바리, 폴란드와 체코·독일을 포함하는 슐레지엔 지역 출신의 음악가가 만들었다. 덕분에 보헤미아 출신의 연주자가 많은 매우 특별한 음악적 유전자와 정체성을 가지게 됐다. “오케스트라는 마치 가족과도 같다”며 혈통을 강조하는 클래식계의 속담이 생각났다. 이 악단은 창단한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세대가 교체되고 있지만 여전히 보헤미안 특유의 감성이 남아 있다. 모차르트가 그 옛날 프라하의 음악가를 얼마나 칭송했던가.

슈퍼스타 지휘자가 이끄는 유능하고 화려한 교향악단의 음악도 감동이지만 차별화한 사운드로 순도 높은 음악을 들려주는 밤베르크교향악단과 블룸슈테트의 조합은 너무나도 특별했다. 고전음악의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만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이날 연주는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을 첫 곡으로 연주했다. 화려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떠나 한적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편지를 청중에게 한 장 한 장 음악으로 써줬다. 절제된 표현은 평온함을 주었다.이어 연주한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은 네 악장의 연결고리가 선명하게 드러난 정통적인 연주였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6번’은 초연날짜가 같다. 순서도 6번이 먼저였고 그후에 5번을 연주했다고 한다.

이날 민첩하고 날렵한 현악기의 앙상블은 가볍지만 결코 베토벤의 무게를 잃지 않았다. 관악기는 전 악장을 통해 정갈한 소리로 평화로움과 따스함을 전해주었다. 이보다 더 베토벤의 음악을 순정하게 풀어놓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 연주였다. 베토벤의 음악에 겸손함을 실어 표현한다는 것은 100년에 가깝게 오래 살아온 삶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음악의 위대함 앞에 정직하고 순수해지는 시간이 흘렀다. 다시 이런 순전한 베토벤을 이 세기에 다시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서운함마저 들 정도였다. 그 서운함에 화답하듯 연주한 곡은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이다. 이 음악도 같은 맥락이었다. 볼륨으로 과하게 포장한 강한 베토벤이 아니었다. 아흔의 마에스트로는 우리에게 위대함은 크고 강함이 아니라 함께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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